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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수의 無用之用] 개소리에 대하여 Ⅱ

기사승인 [231호] 2021.09.30  16: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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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수
국문학 전공,동화 작가,
씽쌩이의 강물여행(단행본)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편집)

부주의하게 만든 조잡한 물건이 개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 개소리 자체가 항상 부주의하게 혹은 제멋대로의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점, 개소리는 결코 세심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천성이 생각이 없는 멍청이인가? 그의 생산물은 언제나 너절하고 조잡한가?……개소리쟁이는 무언가 들키지 않고 교묘히 처리하려고 든다는 점은 여전하다.

-「개소리에 대하여」 중에서 / 해리 G. 프랭크 퍼트

결혼 전에는 연극에 미쳐 거렁뱅이로 살면서 시 구절이나 흥얼거렸다. 술값, 담뱃값 외에는 끼니만 때우면 됐을 뿐이니 결혼은 언감생심이었고, 태생적으로 규제나 관습에는 두드러기가 돋는 체질이었으니 역마살의 연극쟁이는 제격이었다. 돈과 명예 따위를 하찮게 여기니 아쉬울 게 없었다. 싫으면 떠나고 맛있는 일이 생기면 눌러앉아 천착했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 개목걸이에 묶였다.

어여쁜 개목걸이에 갇히니 어쩔 수 없이 돈벌이에 나서야 했고 다행히도 애들 가르치는 건 타고났는지 어려움이 없었다. 첫 월급이 140만원, 지금도 환하게 웃던 아내의 미소가 선명하다. 자본의 현물가치에 무던했던 연극쟁이는 점점 돈맛에 중독되더니 어설픈 중산층의 계단을 밟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인의 눈초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굳이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됐을 무렵부터 노마드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톡부터 동남아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다 유랑의 짓거리도 무료해질 쯤, 노모를 모시고 소박하게 살아야겠다고 아내에게 통보했다. 횡성은 어머니의 고향, 여러 해 전에 마련해뒀던 집으로 몸뚱이를 달랑 옮겼다. 어머니와 오손도손 지내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도 잠시, 스멀스멀 나른한 권태가 밀려왔다. 그러던 차에 걸린 것이 체험마을 사무장! 그러나 아뿔싸, 이것이 개소리의 아가리에 나를 처박을 줄이야!

대부분의 어르신과 부락 주민은 선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느 곳이나 개소리에 골몰하는 인간은 있는 법, 꼭 이런 인간들이 사람 염장을 지르고 뒷말로 타인을 험담하는 것에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법이다. 이런 개소리쟁이들은 저들끼리 뒷구멍에서 험담하다가도 마주보면 정색하고 웃는 재주에 탁월하다. 체험마을 사무장은 조선시대 공노비와 다를 바 없었다.

개소리쟁이는 그들만의 기준이 있다. 나이는 상대방에 맞춰 고무줄이고 ‘새마을지도자’라는 완장만 차도 마을 어른의 대접을 받으려 한다. 걸핏하면 명령조요, 대우해 주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같은 개소리를 짖어댄다. 같잖은 OO재단 이사 나부랭이가 필자의 아내를 두고 “맛이 있네, 없네.” 개소리를 하질 않나, OO체험휴양마을협의회 회장이라는 인간은 필자보다 서너 살 아래임에도 거만한 목소리로 손을 흔들며 호명했다. “어이 사무장, 이리 와 봐.”

남루할지언정 치욕은 참지 못하는 것이 필자의 성격인지라,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으로 여러 날을 보내야만 했다. 헌데 운수 좋게도 필자 개인의 불미스런 일이 빌미가 되어 ‘해고통첩’을 받게 되었다. 개소리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섭섭한 소회는 조금도 없고 후련할 뿐이니 개소리를 양산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설하고, 개소리가 습성인 분들께 개뼈다귀 두 개 던지겠다. 개소리를 흠모하는 인간들은 반드시 다음 조건을 갖추길 바란다. 먼저 재력과 권력의 잣대로 인격을 차등하되 반드시 교언영색(巧言令色) 마음 깊숙이 갈무리하시라. 무릇 교활함의 극치는 거짓과 진심을 치환하는 것이니, 늘 인자한 가죽으로 얼굴을 덮으시라. 이를 두고 성현께서 이르기를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하셨다. 둘째는 하찮은 권력에 의지하여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강한 척하면서 강한 자를 따르고, 약한 자에게는 인자함을 내세워 뒤통수를 갈겨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환원하면 싸구려 화장품이라도 덕지덕지 바르라는 얘기다. 송전탑반대를 부르짖다가 느닷없이 팽개치더니, 돌변하여 백지화에 목숨 던진다고 발악하지 말고 명분이라도 갖추라는 것이다. 자연보호에는 무지하면서 환경단체라고 우기지 말고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나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행동’ 몇 구절이라도 암기하고 꿈틀거리면 그럴듯한 똥폼이라도 나지 않겠는가. 친환경이니 농촌공동체 활성화니 말로만 떠들면서 혈세 빼먹기와 이득 챙기기에 골몰하는 몇몇 체험마을도 뻔뻔한 구호만 반복하지 말고 자생력을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해야 명분이 서질 않겠는가 말이다.

초가을 밤이 시나브로 깊어지는 계절이다. 개소리쟁이들의 조잡한 개소리가 개구리 울음소리보다는 더 세련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니 이해하시길 부탁한다. 아니면 그냥 그렇게 살다 추하게 가시든지!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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