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나명수의 無用之用] 우쭐대는 나무는 나대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기사승인 [232호] 2021.10.16  15:11:05

공유
default_news_ad1

국문학 전공, 동화 작가,
씽쌩이의 강물여행(단행본),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편집)

별 희한한 일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담배를 달라고 해도 야단하면 사법처벌을 당해야 하고, 똑똑한 바보들의 부패지수는 나날이 신기록을 알린다. 형제 사이도 돈 몇 푼에 원수가 되고 사람들은 알량한 권력에 목매달고 싶어 환장한다. 곳곳이 피비린내 나는 증오와 협잡이 횡행한다. 현기증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해도 시원치 않다. 하지만 이런 부조리한 현상이 극심할수록 좋은 세상을 향한 갈망의 몸짓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가치다.

장자(莊子)는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쓸모있음의 쓰임(有用之用)은 알지만 쓸모없음의 쓰임새(無用之用)는 알지 못한다.” 뭔 개가 풀 뜯는 소리인가? 곧게 우뚝하여 잘났다고 우쭐대는 나무는 나대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굽고 못난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기에 버려지는 것 같지만 유용한 것이다. 얄팍한 재능과 권력을 뽐내다가 나자빠진 이들은 부지기수다. 가까이는 박근혜와 최순실, 이명박, 자랑스런 횡성의 전 군수 한규호 등 많은 위정자들이 그렇다. 반면 묵묵히 밭을 일구는 농부와 새벽을 깨우는 청소부, 삶을 노래하는 시인은 위태로울 일이 없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굽은 나무지만 지렁이를 보듬고 새에게는 둥지를 내주며 온갖 생명을 기른다. 지친 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그늘을 내어주며 위무한다.

노숙자를 바라보는 대부분은 경멸이나 측은지심을 가질 것이지만 편견일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원조노숙자’라 하겠다. 그는 자유를 위해 소유를 버린 자발적 노숙자다. 노숙자는 낡은 나무통에 기대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백마 타고 등장한 알렉산더대왕이 짝다리 건들거리며 우쭐댄다.

“어이, 디선생. 뭐 원하는 거 없슈?”

디오게네스는 한방에 보내 버린다.

“짜X, 비켜. 일광욕이나 즐기게.”

아마도 디오게네스가 현대인을 보면 ‘돈과 명예, 권력에 묶여 노예로 살아가니 행복하냐?’며 혀를 끌끌거릴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서열화를 당연하게 여긴다. 성적이 1등이면 모든 면에서 1등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1등은 착한 학생이고 꼴찌는 나쁜 학생이다. 1등은 영특하고 미래의 동량이니 모든 면에서 우등하다. 너나없이 칭찬만 하니 정말 그렇다는 최면에 매몰된다. 꼴찌는 패배자며 열등하다는 손가락질만 받으니 매사에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천박한 고정관념이 1등에게는 건방진 우월주의를, 꼴찌에게는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2등부터 꼴찌까지의 헌신(?)이 없었다면 1등이 존재할 수 있으랴. 대한민국을 더럽히는 탁월한 놈들 대부분이 착한 학생 1등인 이유를 알 만하다.

장자의 말씀은 심오하여 해석이 분분하다. 어찌 무용지용의 깊이를 알 수 있겠냐만 필자의 미천한 생각에는, 세상의 삼라만상 중에 홀로 유별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에게 저것은 그것에게 그것은 이것에게 두루 미치고 연결된 것이다. 작다고 하찮은 것이 아니며 크다고 위대하지 않다. 흉하고 아름다운 것도 주관적인 착시일 뿐이다. 무릇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제 각각의 성질로 상생하며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연의 조화와 순리에 역행한다. 다양한 생물 중 하나인 미물 주제에 삿된 욕심으로 만물을 재단한다. 유용(有用)과 무용(無用)의 칼날을 휘두르니 세상은 더욱 잔혹해진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은 알곡을 내어주며 조금씩 쓸쓸해지나 봄이면 다시 연초록으로 채워지리라. 우리의 헛헛한 삶도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 비울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내밀하게 영그는 가을이 되리라.

※외부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