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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방이 가져온 연구소 최대 위기

기사승인 [138호] 2017.10.19  18: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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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25)

곤충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내 생각을 전해주려 만든 황토방 ...주말에 집으로 오는 아이들 따뜻한 밥 한 끼,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재우고 싶어  하루종일 불을 땠는데...

2017년 10월 14일 아침온도.

 

오늘 아침 기온이 2.8도. 아침나절엔 ‘춥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연구소는 잠간 가을이고 곧바로 겨울이다. 벌써 따뜻한 온돌방이 생각난다.

21년 전 연구소 부지를 선택할 때 사람이 생활하기에 편안한 땅을 고른 게 아니고 곤충을 위한 적당한 서식지를 골랐기 때문에 생활은 항상 불편했다. 곤충 실험실이나 서식 공간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 박물관을 건축했다. 우리 가족은 몇 년 동안 예전 쓰러져가는 집을 대충 고쳐 비바람만 막고, 찬장 하나 두고 부엌으로 쓰는 난민촌 막사에서 살았다. 말은 못했지만 가족에게 늘 미안했다. 두더지와 동거하는 안방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쥐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엌에서 조리해야하는 아내는 원성이 자자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가족에게 무심해졌을까? 자책하면서 일 년의 반은 꽁꽁 얼어붙는 얼음과 눈으로 덮이는 겨울인, 연구소 한 귀퉁이에 흙벽과 군불 때는 온돌방이 있는 황토 집을 지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황토 집은 자연과 어울려 살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생태 건축’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 있는 공간 아닌가. 게다가 딸 가영이의 아토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생태학교라는 이름과도 잘 어울리며 뭔가 시골스러움과 외딴 곳을 대표하는 구조물이 될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의미는 가족들에게 꽤 괜찮은 주거 공간을 제공하므로써 곤충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내 생각을 전해주고 어느 정도 진 마음의 빚을 탕감하는 기분이었을 게다.

황토반죽 덩어리, 황토방내부 벽돌쌓기, 황토방틀공사,황토방지붕올리기 하는 모습(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남향의 터에 북풍을 막을 뒷산도 있고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 연기가 잘 빠질  곳에 장소를 정했다. 옛 집터였으므로 의심 없이 자리를 잡아 공사를 시작했다. 대충 황토벽과 초가지붕만 있으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구들장을 놓는 일이 의외로 복잡하고 어려워 동네 목수이신 박종대 형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무로 기본 골격을 만들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황토 흙을 이겨 만든 황토벽돌을 차곡차곡 쌓았다. 몇 십 년 불을 받으며 새까맣게 그을린 옛날 집 구들장을 다시 사용하여 연기 빠질 골을 경사를 맞춰 온돌방을 만들었다. 혹시 연기가 샐까 구들장 위에 깔은 흙덩이를 며칠을 발로 밟고. 새끼를 꼬고 이엉을 만들고 용마루를 만들어 초가지붕도 올렸다. 옛 한옥 살문에 창호지 꽃 누름으로 나비 문양도 만들어 달고. 마지막으로 전통 문양이 들어간 고가구로 실내 인테리어까지 마쳤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고 번거로웠지만 환경 친화적인 황토방에 가족의 건강을 위한 또 생태 연구소에 걸 맞는 조그마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다. 

황토방이 들어서자 연구소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한창 ‘강원 참숯’이 찜질방으로 인기 있던 터라 순수하게 황토와 나무 그리고 볏짚으로 만든 연구소 황토방은 인기 절정이었다. 영훈 초등학교는 1년에 약 10번 이상 생태교육을 연구소에서 진행했는데 당시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참여하여 같이 공부를 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생태적 마인드가 있는 학부모에게 우선적으로 황토방에서 잘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영훈 초등학교 석창준 선생님의 제안으로 학부모들은 열심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 된 학부모들이 하루 밤 황토방에서 지냈던 경험담을 즐겁게 이야기하고.

현재 황토방

아이 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동네에 있는 금성분교와 갑천 중학교에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원주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한창 공부에 힘을 다해야할 때이므로 옆에서 전력을 다해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 팽겨쳐 둔 아이들 때문에 아내는 늘 미안해하고 슬퍼했다. 표시는 하지 않지만 나도 매주 아이들이 연구소에 오면 따뜻한 밥 한 끼,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재우고 싶었다. 2003년도 11월 어느 토요일. 따뜻하게 자려고 하루 종일 불을 땠던 건너편 황토방에 아내와 아이 둘은 잠이 들었고 나는 밤늦게 까지 일을 하다 황토방으로 미처 건너가지 못하고 거실에서 쓰러져 잤다. 새벽 2시쯤인가 3시쯤인가, 아내가 건너와 갑자기 현기증을 호소하며 토하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아들놈이 건너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아내와 아들을 일단 밖으로 나오게 하고 황토방으로 뛰어 들어가 머리가 너무 아파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계속 울고 있던 딸을 들쳐 업고 나왔다. 혼수상태인 셋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는데 얼마나 당황했는지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도착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약 5시간 만에 깨어났다. 가스 중독이었다. 단순히 같은 나무라 생각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밤나무를 태웠는데 후에 알아보니 독성이 심해 밤나무는 땔감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한다. 방구들 틈사이로 연기가 새어나와  가스 중독이 되었던 것. 그 때도 크게 놀랐지만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가스 중독 이후 모두 ‘머리가 나빠졌다’하고 가끔 두통을 호소한다. 다들 끔찍이 황토방을 싫어하고 없애자 하지만 ‘꽃무지’는 무심히 초가 이엉에 알을 낳고 그들의 서식지로 잘 사용하니 아직 용도는 있다. 만약 나까지 황토방에서 잤으면...온 식구가 황천길로 갔을 것이고. 뜻밖의 연구소 최대 위기였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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