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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남긴 것

기사승인 [183호] 2019.09.23  18: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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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호 횡성희망신문부대표

조국이 남긴 것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허구라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가 되길 원한다면 사회 변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조국 서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한 후 근 한 달여간 정국은 온통 ‘조국 후보’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소용돌이쳤다. 일부 언론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도 조국 후보를 지키려는 여당의 음모라고 공격할 정도로 지난 한 달은 온통 조국 후보를 지키려는 자와 낙마시키려는 자와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조국 후보를 옹호하려 하는 사람들이 온갖 논리를 동원해 그를 방어한 덕분인지 초기 그를 반대하던 여론도 거의 찬반이 비등해졌고, 청문회마저도 그간 드러난 의혹의 재판일 뿐 결정적 한 방을 날리지 못하면서 공은 후보자 스스로도 이야기했듯 대통령의 판단만 남은 듯하다. 물론 야당이 건드리지 못한 부분을 검찰이 후보자의 부인을 기소하면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기존의 검찰 권력을 지키려는 세력의 몸부림이라고 폄훼하는 것을 볼 때 힘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국 후보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황교안도 법무부장관을 했는데, 조국이 못할 이유를 묻는다. 나경원 딸의 입시 의혹, 김성태 딸의 취업 의혹을 물으며 그래도 저들보다는 우리가 깨끗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느냐’고 물으며 조국 후보의 사소한(?) 문제는 덮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제대로 된 비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사실 청문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갖게 하는 것은 간단하다. 후보자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점수화하여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하고, 기준점 이상일 때 임명하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국회의원 자신에게도 적용하면 이 사회가 좀 더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조국 후보 이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그러한 기준을 세울 리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대신 상대방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진보와 보수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하고 있다. 차기 유력한 대선 후보들조차 그 정도는 덮고 가야 하지 않느냐며 연일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진영 논리를 주장하는 사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고, 여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그 반사이익은 자유한국당이 챙기고 있다.

사실 이번 조국 후보자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그가 입으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면서 자신은 진보라고 이야기했지만 알고 보니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살면서 온갖 특혜를 누려왔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인 대학 입시 문제를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유리하게 이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 그리고 그 결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번 사태는 그들이 스스로 포장해왔던 것과 달리 낡은 기득권 세력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줬다.

그런 그들이 촛불 정부임을 내세우지만 촛불 집회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여전히 사회의 기득권으로서 그들의 이익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청년실업도 저임금도 고용안정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일간의 대립을 핑계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일련의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국 사태가 남긴 것은 이들이 지금껏 주장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허구라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것이다. 이는 낡은 80년대의 논리일 뿐이다. 민주화를 외쳤던 그때의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기득권에 포섭된 현재의 그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사회를 지금 그대로 유지하자는 세력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세력과의 대립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전에 내세웠던 주장만이 진실인양 떠들어대고 있을 뿐이다. 이 사회가 좀 더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래도 그들 뿐이지 않느냐?’ 대신 ‘사회의 변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태준호 기자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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