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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내 탓"가족 모두가 승리하는 길, 행복해지는 길

기사승인 [186호] 2020.01.08  18: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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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은 ‘마십굴’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였습니다. ‘마십굴’ 이야기에서처럼 부부가 마음을 합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끝내 이겨나갈 수 있고, 못해낼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어렵고 힘들수록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이 고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음을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부부는 끝까지 서로 사랑하고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당장은 변화가 없어 보일 지라도 지금 이 순간 희망의 씨앗, 소망의 씨앗, 사랑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삶의 가을 문턱에서 서서는 오직 찬바람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기적을 스스로 맞이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번에도 이러한 생각과 마음을 이어, ‘서로 내 탓’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선정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어떤 생각과 마음, 자세와 태도를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지난번에 나눴던 ‘애처가’라는 제목의 이야기, 남편이 아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부끄럽고, 무슨 자존심이 문제겠습니까?”라고 호소했던 것과도 같은 흐름의 이야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단호히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삶의 목적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의미의 ‘행복’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 단순하고도 명확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라는 이 명제에는 동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고,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는 등 모든 것이 행복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과정 전반에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가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가족에 대해 강조한다고 해서 지나치다고 할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러한 맥락에 따라 “그렇다면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서로 내 탓’ 이야기를 계기로 이러한 물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서로 내 탓
-가족 모두가 승리하는 길, 행복해지는 길

 

옛날, 어떤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서로 늘 ‘내 탓’하는 집과 늘 ‘네 탓’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두 집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윗집과 아랫집이었습니다. ‘내 탓’하는 윗집은 식구가 여덟이었고, ‘네 탓’하는 아랫집은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아랫집 사람들은 늘 ‘네 탓’만 했기 때문에 늘 서로 으르렁댔습니다. 그릇을 하나 깨면, 누가 이곳에 그릇을 놔두었냐고 하면서 그릇을 놔둔 사람의 잘못이라 하고, 그릇을 놔둔 사람은 그릇 둔 것이 뭔 잘못이냐며 그릇을 깬 사람이 잘못이라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아랫집은 자주 싸우는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하지만 윗집은 늘 조용하면서도 화기애해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아랫집 사람들은 윗집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윗집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하고 엿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 집 며느리가 마당에서 빨래를 삶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빨래를 삶고 있던 며느리가 갑자기 우물가로 달려가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빨래 좀 봐주세요.”   “오냐, 알았다.”

쪽박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 맡겨 놓고 얼른 달려가 가져오면 될 듯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혹시나 해서 서둘렀습니다.

잠시 후, 며느리는 쪽박을 가지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 빨래가 홀라당 타 버렸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분명히 부탁하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시어머니가 따뜻한 불에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크크, 이제 곧 큰 싸움이 일어나겠지?’   ‘크크크’

아랫집 사람들은 속으로 웃으며, 숨을 죽이고 계속 지켜봤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타 버린 빨래를 조용히 부엌으로 가져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웅크리고 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깰까 ‘흑흑’ 소리도 못 내고 울고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랫집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아니, 뭐 하는 거야?”  “저럴 수가?”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러게 말이야.”
“쉿, 조용히 해.”

그때, 시어머니가 흠칫 놀란 듯 깼습니다.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잠결에 들렸던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빨래 삶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에그머니나!”

얼른 고개를 들어 살펴봤습니다.

‘……’ 
“흑흑”

큰일 났습니다. 빨래가 없었습니다. 놀란 시어머니는 허둥지둥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 부엌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며느리를 발견했습니다.

‘아차!’

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며느리를 보니 더욱 미안해진 시어머니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구야, 아가.”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와락 안았습니다. 며느리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림 송영주서울여자대학교 서양회화과 졸업sfineart@naver.com

“미안하다. 아가.”
“…….”
“미안하구나. 내 잘못이다. 울지 말거라.”
“아니에요. 어머니. 제 잘못이에요.”
“아니다. 내 잘못이구나.”
“아니에요. 어머니.”

그때 장작을 해서 들어오던 시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자신이 장작을 해오지 않았으면 괜찮았을 텐데’라고 하면서 장작을 해온 자신이 죽일 놈이라고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부엌문 앞까지 가서 며느리를 위로했습니다.

“애야, 내 잘못이구나.”
“아니에요, 아버님. 제 잘못이에요.”
“아니다. 아가. 내 잘못이다.”
“아니에요. 아버님, 어머님. 아니에요.”

며느리는 울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빨래가 탄 것은 자기 잘못이고, 아버님, 어머님 잘못은 아니라고 거듭거듭 말했습니다.

마침 그때, 아들이 저녁때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부엌에 어머니, 아버지, 아내가 모여 서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본 아들은 얼른 달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
“아니, 왜 울어요?”

아들이 거듭 묻자 며느리는 자기 잘못으로 빨래가 타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자신이 죽일 놈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장에 가서 ‘솥’을 사 오지 않았으면, 빨래를 삶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윗집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내 탓’이라고 하면서 아무도 서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윗집 사람들은 맛있는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로를 보고 웃으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아랫집 사람들에게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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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내 탓’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사실 정말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내 탓’이라고 말해 주면 어떨까요?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얼마나 좋을까요? 적어도 ‘네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 주면 어떨까요?

반대로 ‘네 탓’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네 잘못’이라고 하면 어떤 심정일까요? 굳이 말 안 해도 다 경험해 봤을 겁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을 것이고, 슬펐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이고,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괴로웠을 겁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게마저 ‘네 탓’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서마저 ‘네 잘못’이고, ‘네 책임’이라는 그런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요? 그래도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아마도 끔찍할 겁니다. 그 서운함과 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지경일 것이고, 그 막막함과 공허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순간부터 부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은 서로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후, 춥고, 캄캄하고 답답한 밤을 지새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달리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삶의 태도인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 부부의 삶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잘못을 해서 난처한 상황이나 어려움에 처한 부부에게는 역시나 남편이나 아내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부부는 ‘남편만은 아내만은’ 편들어 주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잘못이었더라도 ‘남편만은 아내만은’ 내 편이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자신 책임일지라도 자신의 편에서 ‘남편만은 아내만은’ 위로해 주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어찌됐든 잘잘못을 떠나 그렇습니다. 아마도 가장 배려받고 싶은 상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사랑 받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아닌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즐거움도, 힘겨운 삶도, 어려운 삶도 함께 겪으면서 하나가 되어, 서로를 남보다 더 잘 알게 되어, 한 몸처럼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서 “‘네 탓’이다. ‘네 잘못’이다. ‘네 책임’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상처가 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결국 온 가족의 행복한 삶을 어둡게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그때에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내 탓’이고 말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마음 상하게 하느니, 괴롭게 하느니 내가 대신 조금 아프고, 참는다면 어떨까요? 그 사랑하는 사람의 상한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정말로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말처럼 쉽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떨까요? 노력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아내가 행복하고, 그리하여 남편이 행복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더 나아가 가족이 아니라도, 부부가 아니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먼저 ‘내 탓’이라고 하고, 먼저 ‘내 잘못’, ‘내 책임’이라고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맹자는 마음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성(性)을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성(性), 즉 마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자기처럼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에 대한 생각과 말, 행동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먼저 ‘내 탓’이라고 하고, 먼저 ‘내 잘못’이라고 하고, ‘내 책임’이라고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심심상인(심심상인)’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은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고, 말없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의 느낌이 통하고, 뜻도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물러나 ‘내 탓’으로 돌리면, 그 마음은 전해져 상대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 머물다 보면, 그 마음을 서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다른 감정이 없다는 것을. 서로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해치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져 상대의 얽히고 뭉친 마음을 풀어 주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그 마음에 자신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더욱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삶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로의 장벽이 걷힐 것이고,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할 것이고, 괴롭지 않게 하려고 할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때부터 평화가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행복이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노력하면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서로를 위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 ‘내 탓’이라고, ‘내 잘못’이라고 먼저 말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창피해서,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둘러대기 바쁘고, 핑계대기 바쁘고,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면,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화를 내고 상처 준다면 서로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서로에 대한 실망과 증오뿐일 겁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패배자이고, 불행할 뿐일 겁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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