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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행여나 잊혀질까 두려운 인연(2)

기사승인 [202호] 2020.06.30  16: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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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軍 한국전쟁 참전 용사 팀 보스(Tim vos)의 한국 사랑

● 헤어짐과 아쉬움 그리고 재회

상주연구원의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은 2010년 11월 부터는 네덜란드어 공부는 제쳐두고 주로 여행을 다녔는데, 할아버지에게는 시간이 너무 아까우셨던 같다. 2011년 3월이 되면서 아픈 날이 많아졌고, 매주 화요일 마다 방문할 때도 누워계셨던 적이 없었는데, 건강이 악화되신 것 같고, 귀국하면 뵐 수 없어 더 걱정이었다. 마음의 병일까? 귀국해서라도 연락을 계속할 수 있도록 주소와 연락처를 여러 묶음으로 준비해 드렸다.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복귀하는 4월 14일, 할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운전이 힘들어 친구분이 대신 핸들을 잡으셨고, 예견했던 것처럼 눈물의 이별장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당부하셨던 현충일 네덜란드 참전비에는 꼭 대신해서 헌화를 하겠다고 마음 속 약속을 했다.

지난 6월 현충일에 네덜란드참전공원을 찾아 헌화참배하는 신학기 박사

귀국해서도 한달에 두 세번씩 전화연락을 했었고, 가족 생일날에는 꼭 축하카드에 20유로 지폐를 한 장 넣어서 보내 주셨다. 표지에는 ‘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라고 쓰셨다. 우리도 두분 생신 때는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고, 전화 통화로 안부를 여쭈었는데, 갈수록 나빠지는 건강상태가 늘 염려스러웠다.

두 딸이 학업을 계속하느라 이후에도 네덜란드에 남아 있었기에,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자주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었는데, 그래도 안부가 궁금해서 2012년 여름에 집사람이 직접 네덜란드를 다녀오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의 사정이 궁금해지자 2014년 9월, 이제는 할아버지께서 교회의 아가씨(리네카)에게 비행기 티켓을 사 줘서 대신 한국을 방문하게 하셨다. 1 주일 넘게 우리 온 가족과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한국 지인들을 총 동원해서 DMZ도 보고, 네덜란드 참전기념비도 참배하고, 서울 구경과 더불어 안보교육을 시켜서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지킨 한국의 발전상을 잘 전하도록 배려했다. 돌아갈 때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사진을 모아서 달력과 탁상용 카렌더를 만들어 보내 드렸다. 엄첨 좋아 하셨으리라..

농촌진흥청이 수원에서 전주로 청사를 옮기고 점차 자리를 잡아갈 즈음, 할아버지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어 꼭 한번 뵈어야겠다는 생각에 2018년 5월, 집사람과 큰딸이 네덜란드 할아버지를 방문하러 다녀왔다. 2층 침실로는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2층까지 레일을 설치하고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이동해야만 했다. 안타까운 심정이야 말할 수가 없었지만, 인간이 시간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

● 아쉬운 이별과 장례식

할아버지가 생전에 준비한 묘지.

올해 4월, Ge Vos 할머니의 생신(3월 27일)날을 맞아 예쁜 모자를 골라 우체국에서 보내고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며칠동안 불통이던 전화는 4월 5일, 일요일 저녁에서야 할머니와 연결이 되었는데, 각각 영어와 네덜란드어로 어렵게 소통했지만, 할아버지가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그로부터 2일 후인 4월 8일, 큰딸 지인이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의 친척뻘 사위인 요한(검사)으로부터 Tim Vos 할아버지가 지난 밤(4.7) 돌아가셨다는 메일이었다. 가족 모두 황망한 충격. 늘 걱정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듣고는 말을 잃었다.

장례식은 4월 10일(금요일) 10시에 교회에서 소수의 친척과 지인들이 모여 진행하고, 인터넷으로 중계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네덜란드 생활에서 할아버지와 인연이 되었던 몇몇 지인들에게도 공지를 하고, 우리 가족 네 명은 각각의 장소에서 별도로 인터넷 장례식에 참석했다. 다행이 인터넷 화질이 좋아서 장례식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네덜란드어도 진행되어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었고, 교회측에서 한국의 지인들을 위하여 중간에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께서 늘 창가에 태극기를 두고, 한국가족을 사랑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남북한의 평화도 기원해 주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생전에 미리 정해놓은 Nunspeet 시립 공동묘지에 안장되셨다.

귀국한 2011년 이후 올해로 10번째 현충일날 강원도 횡성의 네덜란드 참전비를 찾는다. 그 동안 참배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할아버지께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안계시니 그럴 필요는 없겠고 할아버지 이름으로 헌화할 일도 없으리라.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셔서 옛 전우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계실테니까... 

●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신학기 박사 가족과 팀보스 할아버지와 헤이보스할머니.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비행기로도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이국 땅 네덜란드에서,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한 노병을, 와게닝겐의 한 교회에서 만난 농촌진흥청 상주연구원 가족은 10여년 동안 함께 나누었던 가슴 진한 사랑과 따뜻한 추억을 가득 안고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도 우리의 인연을 갈라놓지 못할 거라며....

최상환 기자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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